아버지의 열무비빔밥
아버지는 끈을 매달아 우물 속에 넣어놨던 항아리 같은 주황색의 플라스틱 김치통을 끌어 올렸다. 김치통 뚜껑을 돌려 여니 새빨간 국물에 맛있게 익은 시원한 열무김치가 코를 찌른다. 순간 군침이 확 돈다. 평소에 쌀을 씻는 양푼에 거무튀튀하고 거칠어 보이는 보리밥과 빨간 고추장, 열무김치를 넣어서 한 양판 내오셨다. 보리밥, 고추장, 열무를 신나게 수저로 비벼대고 귀한 김가루도 뿌려 본다. 양푼 바닥을 긁어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삭아삭하게 십히는 열무김치의 식감과 경쾌한 소리가 입맛을 확 사로잡는다.
나는 중학교까지 섬에서 생활했고, 고등학교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 생활을 했었다. 광주 친구들은 섬에서 올라왔다고 해서 나를 유학생이라고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심한 사투리로 얘들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못 알아듣기도 했다. 하기야 물을 건너 육지로 공부하러 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섬에서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다시 차를 타고 십여 개의 버스정류장을 경유해야 광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의 이동하는 데 한나절 이상이 걸리곤 했다. 배 시간이나 차 시간이 맞지 않으면 시간은 더 걸렸다.
-시골 유학생의 자취 생활-
교통편이 좋지 않아 시골에는 자주 갈 수 없었다. 다니는 고등학교가 시내 쪽에 있어서 시골 가는 시외버스를 보고 있으면 시골에 가고 싶고 부모님도 보고 싶었다. 토요일 자취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듣고 있노라면 그 외로움은 더 커졌다. 어머니는 광주로 올라가는 아들을 위해 늘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셨다. 그 당시엔 김치를 담을 통이 변변치 않아 그 주황색 플라스틱 김치통에 김치를 주셨다. 촌스럽기도 하고 냄새도 나고 가져가기 정말 싫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착한 아들이니까. 그때 버스에 김치 냄새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 힘듦을 참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먼 곳에 살아서 좋았던 것은 추석 같은 명절 때 선생님들이 등교하자마자 시골에 가라고 집에 일찍 보내줬었다. 친구들이 나를 이때 제일 부러워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나는 양동과 임동에서 자취 생활을 했다. 첫 자취 집인 양동은 시장과 가까웠는데, 아들을 낳으려다 딸을 6명까지 둔 딸 부자집이었다. 나랑 동갑은 없었지만 나보다 위인 누나 1명을 빼고는 다 동생뻘이었다. 주인집에서는 명절 때 시골에 내려가는 나를 위해 용돈도 챙겨주시던 마음 따뜻한 분들이셨다. 두 번째 자취 집인 임동은 호랑이 할머니가 주인이셨다. 그래서 부모님은 더 좋아하셨다. 물론 나는 좀 힘들었다. 광주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나는 시내버스를 타게 됐다. 충장로 시내를 가려고 6번 버스를 탔다. 그런데 송정리 쪽으로 가고 있다. 아 이런, 반대편에서 타야 시내를 갈 수 있는데 잘못 탄 것이다. 촌뜨기인 내가 방향감각이 없어서 종종 그런 실수를 했다. 내가 살았던 동네도 이젠 흔적이 없어졌다. 북성중 앞쪽 임동은 아예 황량하다. 그 땅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한다. 우리의 추억까지 송두리째 없어지고 있다. 인구는 줄어드는 데 아파트는 계속 짓고 앞으로 늘어 날 빈 아파트를 생각하면 무섭다.
작년에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고3과 중3인 우리 애들은 거의 집에 있었다. 출근하기 전에 점심때 먹을 밥을 준비해주고 나가곤 했는데, 하루하루 애들에게 줄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덕분에 쌀을 평소보다 더 많이 먹게 됐고, 나의 변변치 못한 요리실력도 늘어갔다. 다른 음식은 종종 해도 항상 집사람에게 남겨뒀던 시금치나 배추 나물 무침도 하게 됐다. 채소를 손질하고 씻는 과정이 힘들었지 데치고 버무리는 과정은 재미있고 나 스스로 맛에 감탄하기도 했다. 드디어 내가 나물 무침까지 하게 됐다니. 나만 맛있는가 했더니 애들과 집사람도 맛있다 한다. 계속 나만 시키려고 그랬을까? 아무튼 맛있다 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하루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택배로 열무김치를 보내주셨다. 그 열무김치를 보니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해주시던 열무비빔밥이 생각이 났다. 그래 오늘은 열무비빔밥이다. 이번에는 고슬고슬한 흰 쌀밥과 열무김치, 거기에 참치와 김가루도 넣고, 참기름도 넉넉하게 두르고, 통통한 깨도 듬뿍 뿌리고 계란후라이도 한 장 얹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우물에서 올린 열무김치로 해주신 비빔밥보다는 덜 시원했지만, 그 고소함이 이를 데 없다. 이번에도 성공.
-나를 기억해주는 음식-
코로나19로 뜻하지 않게 식사 준비할 기회가 많이 생겼다. 그동안 볶음밥을 아주 다양하게 많이 해주다 보니 애들이 이제는 볶음밥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의 주특기는 볶음밥인데 말이다. 그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잘 먹는 애들 모습을 보며 행복했고, 오늘은 또 어떤 메뉴를 선보일까 상상하면서 즐거웠고, 만들어준 음식에 식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 설레기도 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우리 애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내 자녀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그 아이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면서 나를 기억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아버지의 열무비빔밥을 기억한 것처럼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싱싱한 부추와 오징어, 양파, 당근을 넣어서 부추전을 만들어줘야겠다. 여러분들도 오늘 퇴근 후에 봄 내음이 가득한 부추전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