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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05-12 09:25
(전남매일) <화요세평> 잔인한 5월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74  
   http://www.jndn.com/1778486750432234047 [146]

<화요세평> 잔인한 5월

황수주 광주북구청소년상담복지·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장
밤 늦은 시간까지 내몰리는 청소년
청소년을 내려다보지 말고 쳐다보라


누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그러나 2026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잔인한 달은 5월이다. 청소년의 달, 가족의 달,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다. 달력은 온통 분홍빛이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지금 이 순간도 찢기고 있다.

5월 5일 새벽 0시 11분, 광주의 한 거리. 귀가하던 여고생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도움의 소리를 듣고 달려온 남학생마저 흉기에 부상을 입었다. 평범한 귀갓길이 한순간 비극으로 바뀌었다. 이 사건을 우리는 '불운한 개인의 사고'라 부를 수 있을까. 그 학생은 우리 사회가 설계한 구조 속에서 그 자리에 내몰려 있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학원 수업과 스터디카페, 그 사이를 오가야 하는 구조적 현실이 그 학생을 그 시간, 그 장소에 있게 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미래의 주역'이라 추켜세우면서도, 밤 늦은 시간까지 그들을 내몰고 있다.

어린이날 당일, 어린이 교통사고는 평소의 2.4배에 달한다. 행복해야 할 날에 아이들은 더 많이 다치고 더 많이 죽는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는 날, 그 아이들을 안전하게 품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이 어린이날에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놀 시간을 주세요"였다.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그 소망이, 이 사회에서는 간절한 요청이 되어버렸다. 어린이날에도 학원에 가는 아이들. 우리는 이것을 정상이라 부르고 있다.

청소년 자살 통계는 더욱 잔인하다. 2022년까지 학생 자살의 60.8%가 고등학생이었다. 그러나 2023년에는 고등학생 49.5%, 중학생 43.5%, 초등학생 7.0%(15명)으로 연령대가 무서운 속도로 낮아졌다. 2026년 비공식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 자살은 더 늘어났다. 한때 초등학생 한 명의 자살이 뉴스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매달 한두 건씩 일어나고, 상담 현장에서도 초등학생의 자살 사고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5명 중 1명이 최근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며, 31%가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다. 이것이 지금 이 나라 청소년들의 현실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지금 사방이 위험이다. 감기약·수면유도제처럼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한꺼번에 다량 복용하여 환각을 경험하는 '과다복용(OD파티 : OverDose)'이 놀이처럼 번지고 있다. 의약품 중독으로 진료받은 10대 환자는 2020년 대비 2024년 기준 약 40% 가까이 늘었다. "일반의약품이라 안전하다"는 인식이 오히려 더 위험한 통로가 되고 있다. 청소년의 약물 경험이 담배 경험보다 많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으며, ADHD 치료제 남용도 심각하다.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더 오래 깨어 있기 위해 처방전 없이 약을 구하는 아이들. 입시 경쟁이 만들어낸 약물 오남용의 역설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 77%는 10대와 20대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가해자의 절반이 10대이며, 국수본이 아시아 7개국과 공조해 단속한 아동성착취물 피의자의 60%가 10대였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우리 아이들이다. 스마트폰과 SNS가 일상이 된 환경에서, 딥페이크 합성 영상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다. 그 몇 초의 범죄가 한 사람의 삶을 영원히 바꿔버린다.

학교폭력은 여전하다. 전체 초·중·고교생의 3%가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으며, 언어폭력·집단따돌림·신체폭력이 그 뒤를 잇는다. 더 심각한 것은 학교 안 위기 대응 체계의 부재다. 청소년 자살이 늘어도 학교 상담선생님은 부족하고, 1차 안전망은 역부족이라는 보도가 잇따른다. 위기의 청소년이 손을 뻗어도 잡아줄 손이 없는 구조,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소풍과 수학여행이 사라지고 있다. 초등교사의 96%가 현장체험학습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법적 책임과 악성 민원에 대한 두려움이다. 가장 안전해야 할 일상, 학교에서의 놀이와 경험마저 소수의 분노에 의해 다수의 아이들이 빼앗기고 있다. "놀 시간을 주세요"라는 호소가 어린이날 특집 기사에 등장하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루스 리스터는 빈곤과 배제를 이야기하면서 "보이지 않는 존재는 지원받지 못한다"고 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도 아동·청소년정책은 뒷전이고, 이들의 위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켜켜이 쌓이고 있다. 카메라 앞의 어린이날 행사장에는 웃음이 넘쳐도, 카메라 밖의 새벽 귀갓길, 학원 뒷골목,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지금도 비극이 진행 중이다.

방정환은 1923년 '어린이 선언'에서 어른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십시오." 한 세기 전 식민지 조선의 거리에서 그 말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사실은, 그 시대 아이들이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약속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내려다보는 눈은 평가하고 비교하고 경쟁시킨다. 쳐다보는 눈은 응원하고 받아들이고 함께 있어 준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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