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됐다. 이 개정안은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법률 명칭을 '학교 너머 청소년'으로 바꾸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밖'이라는 말이 '이탈'과 '부재'를 연상시켜 심리적 소외감과 낙인 효과를 준다는 것이 개정 이유다. 법률 용어의 변경은 단순한 언어적 수사의 교체를 넘어선다. 그것은 전국의 행정 체계와 법령, 그리고 현장의 지원 인프라 전반에 즉각적인 파급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다. '너머'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낙인 효과를 해소하고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취지나, 현장의 목소리는 이와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 우려 크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제도와 법령 전반의 연쇄적인 혼란이다. 현재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하위 법령, 조례, 지침, 사업계획서, 유관기관 협약서 등에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용어가 변경될 경우, 이 방대한 자원과 문서들을 일제히 개정해야 하는 전국 단위의 행정적 작업이 불가피하다. 법 개정이 가져올 파급 범위와 행정적 소모에 비해, 용어 순화로 얻을 수 있는 실제적 기대효과는 지극히 불분명하며, 이는 곧 고스란히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현실적인 예산의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전국 222여 곳에 달하는 '학교밖 청소년지원센터(꿈드림)'의 기관 명칭을 비롯하여 현판, 홈페이지, 각종 홍보 안내자료, 그리고 국가 청소년 안전망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교체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이 소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프로그램이나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데 쓰여야 할 소중한 예산이 단순한 '명칭 교체' 작업에 투입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통계와 데이터의 연속성 단절도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다. 지난 10여 년간 성평등가족부와 교육부 등을 중심으로 축적되어 온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실태조사 및 종단 연구 데이터는 청소년 정책의 방향을 가늠하는 핵심적인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용어 기준으로 통계 체계가 이원화되거나 단절될 경우, 과거 데이터와의 비교분석과 정책의 효과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추적하는 데 큰 혼선이 발생하게 된다.
대국민 인지도와 서비스 접근성의 저하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는 이미 오랜 기간 공공 홍보와 사회적 인식을 통해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학교 너머 청소년'은 어감상 매우 생소하며 즉각적인 의미 전달이 어렵다. 특히 정보 취약계층에 놓인 위기 청소년들이나 그 보호자들에게 이러한 추상적인 용어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켜 필요한 공적 지원과 서비스에 접근하는 문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너머'라는 표현 자체가 지닌 개념적 모호성과 법적 불명확성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너머'는 특정한 방향성을 암시할 뿐 대상을 객관적으로 규정하지 못한다. '학교 밖'은 정규 교육 체계의 외부에 존재함을 직관적이고 명백하게 알 수 있는 반면, '학교 너머'는 수사학적 표현에 가까워 법률 용어로 쓰이기에는 객관성과 명확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더 중요한 본질은 낙인 해소의 실효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청소년을 향한 사회적 낙인은 용어 그 자체에서 비롯되기보다, 우리 사회의 편협한 인식, 지원 체계의 질적 부족, 그리고 실질적 처우와 기회의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용어만 화려하게 바꾼다고 한들 예산과 인력, 지원 프로그램이 제자리걸음이라면 낙인 효과는 해소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구조적 원인인 입시 위주 경쟁 교육, 학교 폭력, 가정 내 방임과 빈곤 등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용어 미화에만 매몰되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처사이다.
용어 미화 매몰은 본질 외면 처사
아울러 당사자와 현장의 의견 수렴 절차가 미흡했다. 정작 정책의 당사자인 청소년들과 최일선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청소년지도자들은 오랜 기간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를 스스로의 정체성과 권리 옹호의 언어로 사용해 왔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추진되는 용어 변경은 현장의 역사와 정체성을 부정하는 격이다. 게다가 UNESCO나 OECD 같은 국제기구에서 쓰는 '학교 밖 아동·청소년(Out-of-School Children/Youth)'이라는 용어와도 달라져 국제 통계 비교나 국제 협력 사업을 할 때 불필요한 혼란을 낳을 수 있다.
진정으로 청소년을 위하는 길은 그들을 부르는 이름을 수사적으로 다듬는 데 있지 않다. 불규칙한 생활 습관과 경제적 빈곤, 진로의 방황 속에서도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는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고,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현장 중심의 지원과 예산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이름 뒤에 담긴 무게를 헤아리며,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는 소모적인 용어 변경 논의를 거두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