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9일 김용만 의원 등 국회의원 14명이 발의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기사 수정 : 24일 오후 2시 19분]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를 '학교 너머 청소년'으로 바꾸자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을 두고 부모들의 강한 반발이 일고 있다. 그런데 취재 결과 이 '학교 너머 청소년'이라는 명칭이 학교 밖 청소년 당사자나 부모,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없이 김용만 의원실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 밖 청소년→학교 너머 청소년'로 변경... 왜?
지난 7월 9일 김용만 의원 등 국회의원 14명은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김용만 의원을 비롯해 허성무, 윤후덕, 양부남, 박민규, 한민수, 진선미, 김남근, 이훈기, 조승래, 권향엽, 최혁진, 이강일, 김태선 의원이 참여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법률에서 사용하고 있는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표현을 '학교 너머 청소년'으로 변경하는 것. 현행 법률이 정규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청소년을 '학교 밖 청소년'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 '밖'이라는 표현이 교육 체계에서의 이탈이나 부재를 연상시켜 당사자들에게 심리적 소외감과 낙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 '너머'라는 표현을 사용해 학교라는 경계를 지나 새로운 성장 경로로 나아가는 청소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것이 이 법안의 취지다.
그런데 법안 발의에 앞서 전국의 학교 밖 청소년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이 있었는지를 놓고 반발이 나오는 상태다.
부모들은 "학교 밖이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부터 당사자들과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고, 현장 청소년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학교를 기준으로 청소년을 구분하는 구조 자체가 그대로인데 단어 하나만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용만 의원실은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표현의 부정적 의미에 대한 문제 제기는 현장 청소년들과의 간담회에서 나왔으며 법안에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전문인력의 처우 개선도 담겨 있는데 이것도 역시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학교 너머 청소년'은 누가 만들었나?
취재 결과 '학교 너머 청소년'이라는 명칭은 김용만 의원실에서 자체적으로 작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가 김용만 의원실 관계자에게 "학교 너머 청소년이라는 명칭이 어떻게 나오게 됐나?"고 묻자 "의원실에서 만들었다"고 답한 것.
의원실 설명에 따르면 당초 경기도 하남지역 청소년 간담회에서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는 것. 당시 청소년 정책과 관련해 여러 건의 민원이 제시됐고 그 가운데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명칭의 문제도 포함돼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해당 청소년들이 '학교 너머 청소년'이라는 대체 명칭을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의원실 관계자는 기자에게 "하남시 일부 청소년들이 어떤 대안을 준 것은 아니고 문제를 알려준 것"이라며 "학교 너머 청소년이라는 대체 용어를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명칭은 왜 이렇게 나온 걸까.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당내 전문위원과 법제실, 성평등가족부 등에 대체 명칭에 대한 의견을 조회했지만 특별히 제시된 명칭이 없었고 기존 자료와 기사 등도 살펴봤지만 법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체할 용어가 필요해 결국 의원실 자체적으로 '학교 너머 청소년'이라는 표현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기자에게 "학교 밖 청소년들의 부정적 낙인을 없애기 위해서 당사자 의견 수렴이나 전문가 의견은 없었지만 대체 용어 논의를 위해 법안부터 발의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는데, 이같은 주장을 당사자 청소년이나 부모님들, 청소년 지도자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 밖 청소년 부모연대 대표 "이름 바꾼다고 아이들의 삶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박진원 학교 밖 청소년 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대표는 이번 법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부모연대는 현재 법안에 대한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약 1000명의 의견이 모이면 이를 정리해 의원실에 전달하고 입장문을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부모들이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학교 밖'이라는 표현 자체만은 아니다. 핵심은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명칭을 '학교 너머 청소년'으로 바꾸더라도 학교를 기준으로 청소년을 구분하는 구조 자체는 그대로 남는다는 것.
박 대표는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교를 가지고 청소년을 구별해 놓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학교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말장난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든 국가가 동등한 청소년으로 보고 학습과 복지, 진로 등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름만 바꾼다고 지원이 확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실제 기자가 이 설문이 진행되는 7700여 명 규모의 학교 밖 청소년 부모연대 사이트에 승인을 받고 가입해 부모님들의 의견을 살펴본 결과, 다수의 부모들은 "밖이나 너머나... 기가 차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한심스럽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부모들이 문제 삼는 것은 당사자 의견 수렴의 순서다.
법안을 먼저 발의한 뒤 논란이 생기자 의견을 듣는 방식이 아니라 명칭 변경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추진하려면 법안 발의 이전부터 학교 밖 청소년과 부모, 현장기관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학교 밖 청소년 부모연대가 현재 법안에 대한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약 1천 명의 의견이 모이면 이를 정리해 의원실에 전달하고 입장문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학교밖청소년 부모들의 성난 의견들이다. ⓒ 학교 밖 청소년 부모연대
현장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도 행정 혼란 우려 나와
학교 밖 청소년을 직접 지원하는 현장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황수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장(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명칭 변경이 단순히 간판 하나를 교체하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법률과 조례, 각종 행정지침, 사업계획서, 유관기관 협약서 등에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표현이 폭넓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 명칭이 법률상 변경될 경우 전국의 행정 시스템과 관련 문서, 기관 명칭 등을 연쇄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황 센터장의 지적이다.
전국의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역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센터 명칭과 간판, 홈페이지, 홍보물, 각종 안내자료, 국가 청소년 안전망 시스템 등에도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
황 센터장은 18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이 같은 작업에 적지 않은 행정력과 비용이 들어갈 수 있는데 정작 그 비용이 학교 밖 청소년들의 교육과 복지, 진로 지원에 투입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통계다. 황 센터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축적된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실태조사와 연구 자료와 새로운 명칭 체계가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명칭을 적용하면서 통계와 데이터 관리 체계가 혼선을 빚을 경우 과거 자료와 현재 자료를 비교하거나 정책 효과를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로 풀이된다.
"'너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명확"
청소년계에서도 명칭 변경 자체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지만 현재 제시된 '학교 너머 청소년'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위기다.
김진곤 한국청소년정책연대 공동대표는 "'학교 밖 청소년'을 '학교 너머 청소년'으로 바꾸는 것은 여전히 학교를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라며 "밖이 너머로 바뀌었을 뿐 청소년의 삶을 학교와의 거리로 설명한다는 점은 같다"고 지적했다.

▲SNS상에서 이 학교 너머 청소년이라는 용어들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 SNS에서 발
SNS에도 청소년 지도자들의 반발과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한 청소년 지도자는 "'밖'과 '너머'의 차이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이 교육과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밖이나 너머나 인식이 동일하면 아무 차이가 없다"며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다른 청소년 지도자도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표현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굳이 '학교 너머 청소년'으로 바꿔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듣기 좋은 표현보다 누구나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정확성이 중요하다. '학교 너머'는 무엇을 넘었다는 것인지 오히려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한 청소년지도사이자 사회복지사라고 밝힌 사람은 '배움이음'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제안하며 '학교 밖→학교 너머'처럼 공간을 기준으로 청소년을 규정하기보다 학교라는 제도적 틀과 관계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배움을 이어가는 청소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학교 너머 보다 학교 꼬리표 떼야... 지원의 격차 그대로인데 이름만 바꾸나"
취재 과정인 20일, 충북의 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관계자라고 밝힌 현장 지도자는 기자에게 장문의 의견을 담은 이메일도 보내왔다. '학교 너머 청소년'이라는 표현 역시 학교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며 아예 학교라는 꼬리표를 떼는 방식의 명칭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이 관계자는 현장에서 '학교 밖'이라는 표현 때문에 청소년들이 스스로 위축되는 모습을 경험했다며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가 단순히 검정고시와 직업훈련을 지원하는 공간을 넘어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탐색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전환기의 배움터'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학교와 학교 밖 청소년에게 적용되는 지원 규모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학교와 학교 밖이라는 구분을 넘어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게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밖'을 '너머'로 바꾸는 것이 실제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김용만 의원실 "당사자 의견 수렴 못한 것은 우리의 불찰"
논란이 일자 김용만 의원실의 담당자는 21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당사자 의견 수렴 과정에 부족함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법안을 실무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것.
당초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접근했지만 결과적으로 법안을 만들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당사자 단체와 보호자, 현장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지 못했다는 것인데,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당사자 참여가 충분했느냐 하는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의원실 스스로 인정한 것이지만 뜬금없는 법안 발의를 두고 이미 일은 커진 상태다.
현재 법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 단계에 들어간 상태가 아니다. 의원실은 법안이 발의만 된 상태이며 본격적인 심사 절차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는 법안이 확정된 것도, 명칭 변경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논란이 커진 이후 의원실 내부에서는 향후 대응 방안으로 두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는 현재 발의된 법안을 철회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법안을 유지한 채 정기국회 과정에서 당사자와 현장 관계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뒤 명칭을 수정하는 방법이다. 의원실은 토론회나 간담회 등을 통해 충분히 의견을 듣고 새로운 대체 용어가 필요하다면 이를 다시 논의해 법안 심사 과정에서 수정하는 방안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의원실은 아직 어느 쪽으로 최종 결정했는지는 확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너머 청소년'이라는 표현을 당사자와 현장의 합의도 없이 의원실이 자체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 편견 앞에 힘들어 하는 청소년 당사자들과 부모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