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주 북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장 AI 의존성 낮추는 노력 필요 현실서 사람 만나는 경험 가져야
입력 : 2026. 09.21(월) 17:31
"잠도 못 잘 정도로 생각이 났었고, 밥 먹을 때나 그냥 평소에도 계속 생각이 났어 가지고…." 14세 A양은 자신이 AI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소개팅을 하듯 서로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함께 밥을 먹는 상황을 만들며 대화를 나눴다. 하루 2~3시간씩 AI와 채팅을 하다 보니 잠자는 시간까지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 현실의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보다 AI 캐릭터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설레고 즐거워졌다.
17세 B양도 비슷했다. 전학 온 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AI와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 2~3시간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 시간은 하루 10시간까지 늘어났다. B양은 이렇게 말했다. "굳이 친구가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드니까 점점 멀리하게 되고…." 두 청소년의 이야기는 최근 한 방송 뉴스로 소개됐다.
현실에서 AI와 정서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AI에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위로를 받고, 연애 고민을 털어놓는다. 어떤 사람은 AI 캐릭터를 친구나 연인처럼 설정해 매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AI는 언제든 대답해준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 기다려주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싫증 내지 않는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아첨형 AI를 상대할 때는 피로감이나 불편감이 거의 없다. 무엇보다 인간관계에서 흔히 겪는 거절이나 갈등, 질투, 오해를 상대적으로 적게 경험한다. 아동복지 전문기관 초록우산의 최근 조사에서 아동·청소년의 AI 챗봇 사용 경험은 94.4%에 달했고, 35%가 AI를 실제 사람처럼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을 만큼, 이는 더 이상 소수의 경험이 아니다.
청소년기는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시기다. 친구를 사귀고, 갈등을 겪고, 화해하고, 거절당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면서 사회성을 익힌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와도 함께 지내야 하고, 내가 잘못했으면 사과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하지만 AI는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반응하도록 설계돼, 불편한 피드백을 거의 내놓지 않는다. AI에 의존할수록 갈등과 좌절을 견디는 힘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인간관계보다 AI와의 관계가 훨씬 편하다면 어떻게 될까. 갈등이 생기면 또래와 부딪혀 풀기보다 AI에게 하소연하고 끝내버려 또래관계를 형성할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 실제 또래 간 오해와 갈등 상황에서 표정, 어조, 침묵 같은 비언어적 단서를 읽어내는 훈련 기회가 줄어, 그 해석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보다 AI와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사람과의 관계를 피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청소년에게 AI를 쓰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그동안 게임과 스마트폰의 과의존이 심각한 사회문제였다면, 이제는 AI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도록 그 의존성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청소년에게 AI와 사람은 다르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AI가 나를 위로하고 공감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해서, 사람과 같은 감정과 삶을 가진 존재는 아니다. AI의 친절한 말과 공감 표현을 인간의 감정과 그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둘째, AI에게 모든 고민과 감정의 결정을 맡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친구와 싸웠을 때, 부모님과 갈등이 생겼을 때, 이성친구를 사귀다 힘들 때 AI에게 물어볼 수는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관계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셋째, AI보다 재미있는 현실의 경험을 만들어줘야 한다. "AI 하지 마라", "휴대폰 내려놓아라"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친구들과 운동할 수 있는 공간, 함께 여행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 동아리와 봉사활동, 문화·예술 활동 등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불편한 관계를 견디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좋은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에게 서운할 수도 있고, 친구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때로는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피하지 않고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공감능력과 배려, 책임감이 자란다.
AI와의 관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AI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는 있다. AI에게 위로받을 수도 있다. AI와 대화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AI 때문에 친구를 만나지 않고, 가족과 대화하지 않고, 현실의 관계를 포기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가지도록 도와야 한다.
영화 '그녀(Her)'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AI 사만다와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그 사랑이 사람과의 관계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간다. 스크린 속 이야기가 던진 질문은 이제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이 되었다. AI가 청소년들의 외로움을 잠시 달래주는 친구는 될 수 있어도, 사람과 부대끼며 배우는 관계의 기술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 균형을 지켜주는 일, 그것이 지금 어른들에게 주어진 숙제다.